용산참사: “여기 사람이 있어요” — 개발의 그늘에 지워진 목소리
1.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비극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복판의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경찰 특공대가 진압 작전을 벌이던 중 불이 번졌고, 망루에 있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깊은 충격을 주었고, ‘용산참사’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수십 년간 장사를 하며 살아온 세입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리는 쫓겨날 수 없다”며 옥상 위에 망루를 짓고 농성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2. 재개발의 약속과 세입자들의 현실
당시 용산 4구역은 낡은 건물들이 밀집한 지역이었고, 재개발이 결정되며 정부와 시행사는 깨끗한 아파트와 공원, 새 상업시설을 짓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오랜 세월 삶의 터전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9년간 당구장을 운영한 사람, 13년간 중식집을 한 사람, 25년간 시계방을 지켜온 사람…
그들에게 그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생계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습니다. 건물주들은 수천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세입자들은 평균 2,400만 원 남짓한 보상금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권리금·시설비·투자비는 아예 보상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철거 용역업체의 협박과 괴롭힘까지 겪으며 가게를 지켜야 했습니다.

3. 왜 그들은 망루에 올랐을까
세입자들은 구청과 조합, 시행사에 여러 차례 대화를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묵묵부답과 압박뿐이었습니다.
손님을 쫓아내고, 쇠파이프를 들고 위협하고, 물을 뿌리고, 심지어 동물 사체를 가게 앞에 놓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아이를 키우던 세입자들은 “이런 곳에선 살 수 없다”며 떠났고, 끝까지 남은 이들은 절박했습니다.
“제발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
그들이 옥상 위에 망루를 세우며 외친 것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호소였습니다.

4. 참사의 순간 — 불길 속에 사라진 생명들
2009년 1월 20일 새벽 5시 무렵, 경찰은 특공대를 투입해 망루를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곳에서의 농성이었지만 안전장비와 인명 대피 계획은 거의 없었습니다.
경찰은 “화염병 때문에 불이 났다”고 주장했고, 농성자들은 “물대포와 컨테이너 충격으로 화재가 번졌다”고 반박했습니다.
진실이 무엇이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대화보다 진압이 먼저였고, 생명보다 속도가 먼저였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망루는 불길에 휩싸였고, 6명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5. 핵심 문제① — 과잉 진압과 안전 부실
고공농성은 대화와 설득을 먼저 시도하고, 최후의 수단으로만 진압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진압을 서둘렀습니다.
유류 화재에는 반드시 포말(foam) 소화제가 필요하지만,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인명 안전을 위한 완충장치도, 구조 계획도 없었습니다.
결국 경찰의 성급한 투입과 준비 부족이 대형 참사를 불렀다는 지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6. 핵심 문제② — 불평등한 보상 구조
세입자들이 분노했던 진짜 이유는 보상 구조의 불평등이었습니다.
건물주는 재개발 이익을 받았지만, 세입자는 권리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습니다.
가게를 지키기 위해 수억 원을 투자했지만, 되돌아온 것은 ‘나가라’는 통보뿐이었습니다.
이런 구조적 차별 속에서 세입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습니다.
망루에 오른 그들의 선택이 무모했다기보다 막다른 길 끝에서의 외침이었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7. 그 이후의 삶 — 누구는 추락했고, 누구는 올랐다
참사 이후 세입자들의 삶은 산산조각났습니다.
망루에 함께 올랐던 아들은 두 다리가 부러졌고,
복집 사장은 남편을 잃고 거리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반면 당시 진압 작전의 총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경찰청장은 훗날 국회에 입성해 주거복지를 논했습니다.
누군가는 삶을 잃고, 누군가는 경력을 얻었습니다.
세상은 변했지만, 그 변화는 불평등했습니다.

8. 도시의 변화, 누구를 위한가
용산 4구역은 이후 아파트 단지로 변했습니다.
강제철거는 줄었고 재개발 방식은 달라졌지만, 땅값은 몇 배로 뛰었습니다.
그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화려한 도시 개발의 이면에는 늘 같은 질문이 남습니다.
이 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9. 기억해야 할 목소리
용산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도시 개발과 재개발 구조가 낳은 사회적 참사였습니다.
대화 없이 진행된 강제철거, 불평등한 보상, 안전을 무시한 진압,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세입자들.
우리는 그날의 불길 속에서 사라진 목소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그 외침을 외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10.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면
용산참사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 세입자 권리금·시설비 포함한 실질적 보상제도 마련
- 강제철거 전 공적 중재·조정 절차 의무화
- 고공·밀폐 농성 상황에 맞춘 인명 최우선 안전 매뉴얼
- 경찰의 중립성과 기록 공개 의무 강화
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도시의 발전이 사람의 희생 위에 세워져선 안 됩니다.
개발보다 생명, 이익보다 사람.
이것이 용산참사가 남긴 가장 큰 교훈입니다.

✍️ 맺으며
2009년의 불길은 꺼졌지만, 그날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재개발의 이름으로 삶을 잃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함께 바꿔나가야 할 때입니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이 한마디를, 우리 모두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