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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Vienna)의 100년 주거정책: 집은 상품이 아닌 시민권이다

1. 빈의 주거정책, 무엇이 특별한가?

오스트리아 빈 공공주택

오스트리아 수도 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 배경에는 문화·예술뿐만 아니라 100년 동안 이어온 주거정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빈은 집을 단순한 상품이 아닌, 시민 모두가 누려야 할 공공의 권리로 보았습니다. 이 철학은 단순히 아파트 몇 채를 짓는 차원이 아니라, 돈과 땅이라는 주택 정책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2. 재정 독립과 새로운 세금

1919년, 사회민주당이 빈 시정을 장악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중앙정부로부터의 재정 독립이었습니다. 1922년부터 빈은 독자적으로 세금을 거두고 집행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서울시가 서울에서 걷은 세금을 모두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빈은 신 토지세, 부가가치세, 주택세를 신설해 추가 재원을 확보했습니다. 이 세금 덕분에 전체 세수의 36%를 더 확보했고, 그 돈은 곧바로 임대주택 건설에 투입되었습니다.


3. 저렴한 임대료와 시민 부담 최소화

빈의 핵심 정책 중 하나는 임대료를 건축비의 4%로 책정한 것이었습니다. 토지 가격을 제외한 건축 비용만 기준으로 삼아, 시민 누구나 감당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1925년 기준으로 시민들이 임대료로 지불한 금액은 **소득의 3.4~4.3%**에 불과했습니다. 예를 들어 월 300만 원을 버는 사람이라면 12만 원 정도의 임대료만 내면 되었던 셈입니다.

이러한 저렴한 임대료는 곧바로 시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높였고, 동시에 사회민주당 정부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지지 기반이 되었습니다.


4. 공정한 입주 기준

임대주택이 인기가 많다 보니, 빈은 공정하고 세밀한 입주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 무주택자 우선
  • 기존 주거환경의 밀집도 및 열악함 평가
  • 직장 근속 연수와 생활 여건을 점수화

오늘날 한국의 청약제도와 비슷한 원리를 이미 100년 전에 도입한 셈입니다.


5. 토지 확보 전략: 세금과 역사적 기회

빈의 성공은 무엇보다 토지 확보에 달려 있었습니다. 시 정부는 유휴토지에 중과세를 부과해 토지 소유자들이 땅을 내놓도록 유도했습니다. 또, 임대료 상한제를 실시해 민간 임대시장의 수익률을 낮추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공공임대주택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더해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무너지고 귀족과 황제의 토지가 시장에 헐값으로 풀리게 된 것입니다. 귀금속은 해외로 반출할 수 있었지만 땅은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빈 시정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규모로 토지를 매입했습니다. 그 결과 1918년 시 소유 토지는 18%에서 1931년 33%까지 늘어났습니다.


6. 대규모 주택 건설과 공동체 공간

이렇게 확보한 토지를 바탕으로 빈은 뉴타운 건설 프로그램을 본격 추진했습니다.

  • 1923년: 2만 5천 가구 건설 계획 → 1927년 조기 달성
  • 1927~1933년: 추가 6만 가구 공급
  • 1934년: 전체 시민의 10%가 시 소유 임대주택 거주

주택은 단순한 ‘잠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발코니, 공동 목욕탕, 유치원, 세탁소, 도서관, 스포츠 공간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한국의 신축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와도 흡사하지만, 무려 100년 전에 구현된 모델이었습니다.


7. 여성 해방의 철학: 가사노동의 사회화

빈의 사회주의자들은 주거정책을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사회 철학으로 연결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이 집안일에 묶여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래서 주거 단지 안에 탁아소, 공동 세탁실, 모자 보건소 등을 마련해 가사와 육아 부담을 사회가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여성정책보다 앞선 사례로 평가됩니다.


8. 전쟁과 위기, 그리고 재건

1929년 대공황으로 예산이 줄고, 2차 세계대전으로는 주택의 20%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후 빈은 다시 임대주택 재건에 착수했고, 스웨덴·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1950년대에만 40만 채를 재건했습니다.

이후 1960년대부터는 노후 주택 리노베이션과 도시 재생으로 정책 방향을 넓혔습니다.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주거 질을 높이고, 프리캐스팅 기술을 도입해 비용 절감을 시도했습니다.


9. 21세기의 빈: 난민, 환경, 그리고 지속 가능성

냉전 종식 이후 동유럽 난민 유입으로 다시 주택 수요가 늘자, 빈은 꾸준히 연간 6천~7천 채의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정부가 직접 짓기보다는 비영리 주택조합이나 사회주택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또한 외곽 확장이 아닌 도심 밀도 강화, 에너지 효율 극대화, 제로하우스 수준의 친환경 건축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놀랍게도 이렇게 높은 수준의 기술을 적용하고도 건축비는 한국보다 저렴합니다.


10. 빈의 성공 요인과 한국 사회의 시사점

빈의 주거정책은 운과 능력의 결합이었습니다. 역사적 기회 속에서 대규모 토지를 확보한 ‘운’, 그리고 이를 100년 동안 일관되게 실행한 ‘능력’.

영국이나 독일처럼 경제 위기 때 임대주택을 민간에 매각하지 않고, 끝까지 공공성을 유지한 것도 중요한 차이였습니다.

오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집은 상품인가, 권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빈은 그 답을 100년 전부터 실천했습니다. 집값 폭등과 전세 사기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 빈의 사례는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 스스로 방향을 맞추고 힘을 합쳐야 한다.”


맺음말

빈은 주거정책을 통해 시민의 존엄과 평등을 구체적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저렴한 건축비, 고품질 친환경 주택, 공동체 중심의 시설은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주거 불평등 문제에 깊은 시사점을 줍니다.

이제 질문은 우리 차례입니다.
“서울은 집값을 택할 것인가, 시민권을 택할 것인가?”


📌 추천 키워드:
빈 주거정책, 공공임대주택, 토지공개념, 주거권, 집값, 시민권, 사회주택, 친환경 건축